스페인 역사, 구 스페인 그리고 서고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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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역사에 관하여...

스페인 반도가 로마에 의해 점령당했던 구 스페인시대부터

현재까지 스페인 역사에 대해 조금씩 공유하려고 합니다:)

예전 전공 시간때 배웠던 스페인 역사를 그 당시 필기를 바탕으로 나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구 스페인 Hispania romana

기원 전 218년부터 411년 거의 6세기 동안 로마에 정복당했다.

 

1)     로마의 정복

반도의 정복은 매우 느렸다.

기원 전 218년에서 206년 사이에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차지했고

현재 안달루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초기에 로마는 정복된 영토를 두 개의 지방으로 나누었는데

로마와 가장 가까운 Hispania Citerior와 가장 먼 Hispania Ulterior이다.

처음에 각 지방은 지방 장관이 따로 있었다.

반도에서 로마식 정치는 로마와 소수 권력 제도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자원을 최대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2)     로마화

로마화는 어떤 반도의 민족들이 로마 문화의 세계에 합쳐진 역사적인 과정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로마 사상 체계 등.

물론 모든 반도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세기에 베티카 지역은 매우 빠르고 깊게 로마화가 이루어졌지만,

칸타브리카스 지역은 원시적인 삶을 계속 이어갔다.

로마화는 우연히 순수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로마화의 요소]

-       로마 군단의 수단으로 정복과 군사적 점령

-       군대의 보조병 같이 일했던 원주민들의 군 복무

-       도시들 그리고 원주민들과 함께 협약 혹은 동맹

-       로마 관리들

-       식민 지역과 시의 설립

-       로마 시민들과 원주민 사이의 상업적 그리고 사적 관계

-       통합의 거대한 요소로 활약한 기독교

 

3)     언어 통일

로마의 길어진 정복 기간 동안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는 반도 전역에 확산되었다.

스페인 주민의 로마화는 도시들이 많던 지역에서 매우 빠르고 깊게 일어났다.

특히 베티카에서는 빠르게 라틴어가 원주민들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학문적인 라틴어가 아닌 통속적인 라틴어였다.

라틴어는 군인들, 상인들 그리고 로마 관리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결과적으로 정복자들의 언어와 함께 이베리아 언어와 인도 유럽계의 켈트어는 없어졌다.

 

4)     제국의 위험

3세기 이후부터 로마 제국의 사회 경제적 위험은

노예 형태의 사회에 중대한 변화를 보여줬다.

로마의 평화는 군사 확장을 억제했고 노예를 가질 수 있는 원천 역시 억제했다.

대신에 소작 제도가 확장되었다.

 

 

 


 

2. 서고트족 스페인

411부터 711동안 반도를 지배한 것은 서고트족이었다.

 

1)     게르만족의 침투

로마인은 군대가 없기 때문에

다른 야만족들로부터 보호 면목으로 변방 지역에 서고트족을 들여왔다.

35년후 카탈루냐 지역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로마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스페인에 그들의 침투는 번갈아 제국의 동맹 혹은 정복의 특징을 가졌다.

 

2)     서고트족 군주제

서고트족 군주제는

후기 로마 제국의 사회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과정을 지속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들은 우선 톨레도에 수도를 정했고

서서히 모든 스페인에서 그 지배를 확립했다.

그러나 서고트 왕족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소수의 고트족과 원주민 사이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우선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고트들은 원주민보다 더 많은 특권으로 대다수의 땅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그들은 달랐다. (서고트;아리안/ 원주민;기독교)

각 민족은 그들의 자치적인 법에 의해 통치되었다.

 

3)     서고트족 군주제의 끝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군주제 제도는

왕의 암살 그리고 내전 속 외부의 힘 개입 같은

귀족들의 야망을 조장했다. (외부의 힘: 비잔틴, 수에보 그리고 프랑코)

마지막 왕정기에는

친다스빈토와 왐바 가분 사이의 대립 때문에 쇠퇴가 더욱 빠르게 이루어졌다.

위티자(왐바)의 죽음(710)은 그들 가문에서의 후계자 선출을 어렵게 했다.

의회는 베티카의 통치자인 친다스빈토의 후손인 로드리고를 선출했다.

그래서 위티자의 두 아들들은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이슬람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이슬람의 용병들은 711년에 과달레테 전투에서 로드리고를 이겼다.

(이슬람 용병 + 왐바 가문 세력 VS 친다스빈토 세력)

그리고 단순한 용병에서 정복자로 전환되어 반도의 북쪽으로 전진했다.

그 결과, 중세기 오래 지속되는 모든 내전들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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